내 시대를 향유하기
"Friends: The Reunion"(2021)과 애니메이션 "퇴마록"(2025)을 보고
2025.03.22.
스트리밍 플랫폼 쿠팡플레이에 어제저녁(21일), HBO 콘텐츠들이 들어왔다. 보고 싶었으나 합법적으로 볼 경로가 없어서 못 봤던, 마음속 리스트에 저장만 해두던 시리즈들이 많아 어떤 걸 먼저 봐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여러 콘텐츠 중 결국은 "Friends: The Reunion"(2021)을 선택했다. 오직 K리그 경기를 보기 위해 쿠팡플레이 멤버십을 유료 구독하는 게 아까워서 최근 밥 먹을 때면 종종 "프렌즈(Friends)"를 봤으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프렌즈 캐릭터였던 Chandler(Matthew Perry 扮) 배우의 재작년 부고 소식도 아마 조금은 영향이 있었겠지.
Friends: The Reunion을 보면서 웃기도 어떤 부분에서는 감동받기도 했지만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감사함'이었다. 프렌즈가 방영되던 그 시절(1994년~2004년), 그 콘텐츠를 오롯이 즐겨서, 그 덕에 지금 이 '리유니언'을 보고 향수를 느낄 수 있어서 참 좋고 감사하다는 생각. 세월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고 느끼지만, 그 세월이 마냥 의미 없이 흘러가지는 않는다. 강물이 흐르며 강줄기를 구불구불 굽이치게 만들고 하구에 퇴적물을 쌓듯 무언가를 바꾸고 또 남긴다.
최근 레트로와 빈티지가 유행이어서 그런지 예전에 즐겨 본 콘텐츠의 리부트가 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지난 2월 애니메이션 "퇴마록"(2025)을 보면서도 작품 내외적으로 즐거웠고 또 감사함을 느꼈다. 비록 하이텔 연재를 실시간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퇴마록은 내가 2000년 초반부터 수십번은 '정주행'한 책이고 이번 애니메이션은 소위 '원작 팬'들이 드디어 만족할 수 있는 미디어믹스기 때문에 원작과 2025년에 새로 나온 애니메이션의 차이를 또 하나의 재미로 즐길 수 있어서 더욱 좋았던 것 같다. '카폰'이 나오던 퇴마록에 30년이란 시간을 넘어 핸드폰이 나왔을 때 느끼는 짜릿함을 90·00년대에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이 느끼기엔 어렵겠지.
이처럼 '내 시대'의 콘텐츠를 그 시간 속에서 오롯이 향유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프렌즈와 퇴마록뿐만 아니라, 스타워즈(Star Wars)와 엑스맨(X-Men) 영화 시리즈를 따라가면서 볼 수 있었던 것도, 해리포터(Harry Potter) 시리즈의 국내 출판을 오매불망 기다린 것도 돌이켜보면 참 좋은 기억이다. 게다가 80년대 후반생으로서 운이 좋게도 K팝을 비롯한 한국 콘텐츠가 국제적 현상이 되는 것과 조성진, 임윤찬 등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등장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것도 감사하다.
앞서 다소 거창하게 '내 시대의 콘텐츠를 향유'하는 게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가지는 재미와 의미에 대해 썼지만, 사실 '실시간성'이 주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작년 12월 25일, 네이버 시리즈의 웹소설 "아포칼립스를 걷는 우체부"의 연재를 따라가면서 크리스마스 당일에 올라온 따뜻한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를 읽을 때 조금은 짜릿함을 느꼈다.
탄내 나는 얼굴로 물끄러미 날 바라보는 두 사람.
내 차례였다.
"……메리 크리스마스?"'164화. 메리 크리스마스', 오드로버, "아포칼립스를 걷는 우체부"
또, 재밌게 읽고 있는 웹소설에 나오는 특정 단어나 캐릭터 이름이 그날 연재분의 내용 때문에 트위터 '실트'에 오를 때도 어떤 짜릿한 즐거움을 느낀다. 조금 더 성실하게 현재의 것들을 즐겨야겠다. 책도, 영화도, 음악도. 오늘과 내일의 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