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민음사(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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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태반이 까먹고 일부만이 기억한다 하더라도 그중 한 사람이 언젠가 누군가를 구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런 멀고 희미한 가능성을 헤아리는 일을 좋아했다. 멀미를 할 때 먼 곳을 바라보면 나아지는 것과 비슷한 셈이었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게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친절이 지나치게 저평가된 덕목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은영과 인표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만화 동아리 애들이 보글보글 몰려들었고 어느새 강선과 은영은 그 무리에 낄 수 있게 되었다. 강선은 그림을 잘 그려서, 은영은 심령 소녀라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학교에서 두 사람을 가장 개의치 않아 하는 무리였다. 하긴 그렇게 폭 넓고 놀라운 이야기들에 푹 젖어 사는 아이들이었으니, 쉽게 편견에 사로잡힐 리 없었다.
캐릭터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장르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이 너무 차갑고, 끔찍하고, 징그러운 것처럼 느껴질 때 그래서 사람에 대한 피곤함이 밀린 수면처럼 몰려올 때면 이 책을 다시 펼쳐 든다. 이 책을 또 펼쳐 읽을 날이 가능한 한 적으면 좋겠다.